우리와의 철학적 대화

우리와의 철학적 대화
밑바닥에서부터 철저한 성찰을 감행하는 근원적 사유의 전형
한국 철학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이어나가려는 창의적 시도

연세대학교 철학과의 이승종 교수는 지난 세월 끊임없이 대화의 철학을 모색해왔다. 비트겐슈타인의 주저인 《철학적 탐구》를 역주하는 등 비트겐슈타인을 비롯한 영미의 분석철학에 관한 연구 성과를 쌓아오는 한편, 그 경계를 넘어서려는 시도를 이어왔다. 하이데거의 철학을 천착해 《크로스오버 하이데거: 분석적 해석학을 위하여》라는 굵직한 연구서를 펴내기도 했고, 이태 전에는 “동서양의 철학적 전통을 섭렵하면서 데리다, 장자, 비트겐슈타인, 율곡, 다산, 주희, 용수, 러셀, 들뢰즈와의 생산적 사유를 시도”하여 《동아시아 사유로부터》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오랜 세월을 준비해 펴내는 신작 《우리와의 철학적 대화》에서도 이러한 기조는 계속된다. 이번에 그가 대화를 나누는 상대는 제목에 나타나 있듯 우리 사유의 세계를 개척한 한국인 철학자와 미학자, 예술가 들이다. 일제강점기의 미학자인 고유섭, 소설가 서영은,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의 융합을 시동한 대표적 철학자 김형효, 방대한 저작을 통해 너른 사유 세계를 선보인 박이문 등 주인공이라 할 만한 인물들 외에도 김상환, 승계호, 이기상, 이진경, 박영식, 최진덕 등 40년 철학 공부의 길에서 저자가 만난 사람들이 두루 호명된다. 여기에 리처드 로티처럼 한국현대철학의 지형도를 그려내는 데 도움이 되는 주요한 해외의 철학자들도 거론하면서, 이 교수에게 영향을 끼친 이들이 남긴 글에 대한 철학적 분석과 비평을 선보인다.


대화의 철학:
철학의 길에서 만난 우리 철학자와 예술가들

“한국의 철학자들은 다른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취업, 재임용, 승진을 위한 연구업적을 채우기에 바쁜 실정이다. 설령 한국철학계에서 주목할 만한 업적이 나온다 해도 그것에 관심을 가져줄 여유가 없다. 정대현 교수의 《한국현대철학》에 대한 한국철학계의 침묵이 그 좋은 예이다. 우리 철학계의 이러한 분과 상태를 비판적으로 점검하고 무언가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목적에서 《우리와의 철학적 대화》를 구상하게 되었다”(11쪽).

그러면 이러한 대화의 목적은 무엇인가? “절실히 요청되는 우리 학문에 대한 정당한 평가 작업”을 수행하려는 것이 그 의도다. 그 과정에서 “선배의 학문에 대한 평가를 넘어 나름의 철학적 비전을 제시하려”는 데까지 이르는 것을 의도한다(17-18쪽). “우리는 한국현대철학의 소개가 아니라 한국의 학자들과 철학을 하려 한다. 대화는 그 철학함의 방법을 아주 일반적으로 표현한 것인데, 사실은 비판, 부연, 비교, 분석 등의 다양한 방법이 동원된다. 현존하는 한국의 학자들을 망라하기보다는 연구의 대상이 되는 학자들을 선택과 집중의 원칙하에 선별해, 그들과 직접 학술적으로 교류하는 밀착연구의 형태를 띤다”(11쪽).

일제 때 요절한 고유섭을 제외하면, 이 책에 등장하는 이들은 모두 이 시대의 인물들로서, 저자가 직접 만나 교유한 인물들이다. “이 책에서 연구의 대상으로 삼고자 하는 학자 및 예술가와는 책의 집필 과정 중에 그 내용에 대해 직접 만나 대화하고 비판적 조언받았다. 그중 생산적인 대화와 비판은 본문에 직접 반영해 명실공히 대화 해석학의 결실이 되도록 하였다”(17쪽). 한국철학 공동체 내에서 대화와 상호작용의 부재가 철학적 문제들의 공유를 가로막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 우리 철학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이어나가려는 창의적 시도가 담긴 책으로, 상대에 대한 긍정적 평가와 더불어 분석철학자다운 예리함으로 논변을 분석, 맹점과 모순, 한계를 찾아내기도 한다. 이 같은 가차없는 비판은 엄밀하고 철저한 검토라는 철학의 본령을 보여주며, 읽는 이에게 이따금 속시원한 느낌을 안겨주기도 한다.

각 장 말미에는 각 편의 글을 발표한 뒤 이루어진 논평과 답론 등을 수록하여,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대화의 철학’을 구현하려 했다. 필자 혹은 발제자들의 동의를 일일이 구하는 수고가 뒤따르는 일이었다. 덕분에 독자들은 철학 분야의 학술토론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를 엿볼 수 있다. 가령 7장(김형효의 노장 읽기)의 글에 관해서는 당시 꽤 화제가 되며 여러 차례 치열한 논의가 이어졌는데, 저자의 비판적 분석에 대한 김형효 교수의 답론, 다른 학자의 논평과 토론, 재반론 등 8편의 글이 실려 있다. 소설가 서영은의 작품에 대한 철학적 독해를 선보인 6장의 글에 대해서는 소설가 서영은 자신의 답론과 물음이 수록되어 있으며, 대중적으로도 유명한 철학자 강신주 박사의 꽤 긴 논평도 실려 있다.


엄밀한 텍스트 읽기와 심도 깊은 토론으로
그려낸 한국현대철학의 지형도, 우리 사유의 세계

‘들어가는 말’에서 소개하고 있는 책의 얼개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1부에서는 한국 현대철학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현대철학의 면모를 조망하는 글들을 통해 현대철학의 지형도를 그려본다. 1장(동일자의 생애)에서는 전통 철학에서 현대철학으로의 이행을 동일자에서 타자로의 주제 변환의 관점에서 서술한다. 2장(한국현대철학의 지형도)에서는 서양현대철학이 한국에 수용되면서 형성된 한국현대철학의 지형도를 대륙철학과 영미철학 사이의 대립구도를 중심으로 그려본다. 3장(철학과 사회)에서는 분석철학이 한국에 수용되는 과정과 현황, 한국철학의 정체성 문제, 학제 간 연구와 융합연구, 역사철학 등의 주제를 대화로 풀어내고, 4장(철학사의 울타리와 그 너머: 로티와 김상환 교수)에서는 대표적 탈현대 사상가로 국외에서는 로티를, 국내에서는 김상환 교수를 택하여 이들의 탈현대적 철학사론이 지니는 문제점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5장(고유섭의 미술철학)은 고유섭의 저술들에 대한 독해를 통해 우리 예술사의 철학을 살펴보며 이 과정에서 우리 학계가 전통으로부터 전수받은 문화소文化素들의 함축과 한계를 가늠해보는 마당이다. 서영은의 소설들을 니체의 철학과 견주어가며 허무주의의 극복이라는 이 시대의 과제에 대한 하나의 시도로 읽어내는 6장(우리는 누구인가: 서영은 문학의 철학적 독해)은 서구의 시대정신이 우리 문학에 미친 영향과 그에 대한 우리의 응답을 짚어보는 장이기도 하다.

3부에서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 한국철학자로 김형효와 박이문을 집중 조명한다. 박이문과 김형효가 세상을 떠난 지금, 뒤늦게나마 이 두 거장의 철학을 평가하는 자리이다. 7장(김형효의 노장 읽기)에서는 노장에 대한 김형효의 해체적 독법의 의의와 문제점을 몇 가지 범주로 대별해 구체적이고도 비판적으로 거론하며, 8장(박이문의 철학세계)에서는 박이문의 국문 저술뿐 아니라 영문 저술들을 섭렵하여 그가 전개하는 논지의 결함과 문제점들을 비판하고 보완한다.

9장(토론과 스케치)에서는 승계호, 이기상, 이진경, 박영식, 최진덕 등 국내외에서 활동해온 대표적 한국현대철학자들의 저술들을 비판적으로 거론하여 이들이 기여한 한국현대철학의 현황을 조망하고 이들 분야들에 대한 국내외 연구의 현황을 점검한다. 10장(대화)은 저자의 인터뷰와 학생들과의 대화가 담긴 장인데, 시대가 철학에 부과하는 사명, 철학의 본령이 기술문명 시대에 굴절을 겪게 되는 과정, 미래의 철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 등을 한국 사회의 당면 문제들과 결부해 하나하나 살펴나간다.

영미 철학, 유럽철학, 중국철학에 대한 종속성에서 벗어난 한국 철학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한편, ‘수행’과 ‘지행합일’의 철학을 추구하는 저자의 꾸준한 노력도 책의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저자

이승종

출판사

김영사

ISBN

978-89-349-9105-2 (93100)

출판된

2020

전문분야

인문학

주제

기타
문학
예술과 문화

지역

대한민국